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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의 친구 ( Friend's of Dorothy )

김조광수 감독 인터뷰-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by 샘터0 2022. 9. 10.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 

김조광수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영화, 그리고 성소수자를 위한 인권운동
청년필름 대표 김조광수 감독의 솔직한 고백

 

Kim Jho Kwang-soo : 이 인터뷰는 2013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Kim Jho Kwang-soo, also known as Peter Kim, is a South Korean filmmaker. Wikipedia
 

문화가 발달하고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다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점차 유연해졌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는 포용력이 커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 ‘다름’의 기준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성소수자들이다. ‘그들 중 하나’로서 김조광수 감독은 영화와 책으로 그 다름을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문화가 발달하고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다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점차 유연해졌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는 포용력이 커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 ‘다름’의 기준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성소수자들이다. ‘그들 중 하나’로서 김조광수 감독은 영화와 책으로 그 다름을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영화 <해피엔드>, <와니와 준하>를 비롯해 최근작인 <조선명탐정>과 <의뢰인>까지, 영화계에서 김조광수 감독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몇 안 되는 제작자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사회가 규정한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모든 사람은 저 마다 개성이 있고 각기 다른 타고남이 있게 마련이다. 그의 경우는 영화 제작자로서 남다른 통찰력과 감각이 있었고 타고났다고 생각할 만한 낙천성과 밝음이 남달랐다. 더불어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힘과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도 그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다름은 성 정체성이었다.

그는 게이, 즉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미 꽤 오래전에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그는 언젠가부터 퀴어영화(동성애자의 권익을 보호하거나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영화)의 감독으로도 데뷔해 지금까지 여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최근 개봉작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퀴어영화의 흥행으로는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하니 감독으로서도 성공인 셈이다.

그가 주력하는 또 하나의 일은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를 합쳐서 부르는 단어) 지칭되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인권운동이다. 하나만 하기도 벅찬 세상일 텐데, 과연 그 열정의 원천이 무엇일까. 그런 그가 최근 새로운 책을 발표했다. 자신의 삶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 낸 이 책의 제목은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이다. 이런 표현 역시 편견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 꽤나 도발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남다른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까지

많은 이들에게 당연하게 인식되는 것이 때론 심각한 편견일 수 있다. 그런 당연한 편견(?)으로 인해 우리사회 많은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음지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문제는 사회가 그런 그들을 단순히 ‘병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들의 ‘다름’은 취향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성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김조광수 감독은 자신을 드러냄으로서 사회가 암묵적으로 외면하고 부정해 온 그들을 감싸고 성 정체성의 다름이 질병이나 죄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말하기 이전 그 역시 많은 성소수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숨기고 부정하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자서전 성격의 이번 책을 통해 그는 그 모든 시간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있다.

중학교 시절 첫사랑을 통해 처음 동성애자임을 인식했다고 하셨는데, 커밍아웃 이전까지 원하고 하고자하는 일을 쫓아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혼란이 이어졌을 듯 한데요.

네, 많은 성소수자들이 겪는 문제죠. 사춘기가 가장 예민한 시절이잖아요. 그런 시절에 스스로를 계속 부정하게 되는 상황인 거죠.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들이 이어졌어요. 그러다 서른 살 때 처음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때까지 무려 15년을 계속 동성애자인 제 자신을 부정하며 살았던 것이 힘들었죠. 그 외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연극영화과로 진학을 했고 대학시절에는 학생운동에 몸담기도 했고……. 전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선택해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는데, 내면에서는 그런 적극성 이면에 자신을 부정하는 모순을 품고 있었던 거예요. 사실 지금도 혼란스러움에 빠져있던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자전적인 영화도 만드셨던 것으로 아는데요. 이번에 책을 발표하신 것도 그렇고요. 쉬운 일이 아님에도 굳이 감독님 본인의 이야기를 계속 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사랑은 100℃>라는 영화가 저의 우울한 청소년기를 담은 영화죠. 그 영화를 만들 때도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요. 과거의 저와 마주하는 과정이 어렵더라고요.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 이제는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이번 책을 낼 때도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애써 밝은척하고 이야기는 했는데 그때의 상처가 계속 떠오르면서 내상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저는 꽤 밝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게 영향을 받는 걸 보면 저보다 조금 소심하거나 내성적인 사람의 경우는 더 상처받을 거라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어느 정도 용기를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낸 것도 있죠.

책에서는 그의 군대 시절 삼각관계 러브스토리도 공개됐다. 두 명의 남자에게 구애를 받았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그와 같은 성소수자는 아니었다. 김조광수 감독은 “두 사람 모두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인간에 대한 호감이 성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어찌됐건 한쪽은 쿨 하게 “뒤늦게 동성애자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고백했고 한쪽은 김조광수 감독에게 끝내 상처를 준 채 종지부를 찍었다. 김조광수 감독은 당시 경험을 통해 군대 내에 성 소수자들이 받는 오해의 심각성을 이야기했다.


 

군대 시절의 스토리를 보면 일반인들의 호기심이나 장난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이 오히려 상처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군요.

상처가 되죠. 군대에 있는 성소수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자기가 다르다는 것을 들키는 거예요. 예를 들어 군대 내에 성추행 사건의 대부분은 이성애자의 과도한 장난으로 벌어지는 일인데, 만약 그것을 동성애자가 사랑의 형태로 받아들이게 되면 상처가 되거든요. 상대방이 ‘어, 장난이었는데 너 호모였어?’ 이렇게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때문에 두려움이 굉장히 커요. 누군가가 자신을 성적인 놀림감으로 대할 때도 그런 불안함이 있는 거죠. 특히 가해자 입장이 될 수 있는 계급일 경우에는 두려움이 더 커요. 결국 그 부대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장난까지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드러날까 봐 합류하게 되죠.

보통은 군대내 성추행을 두고 동성애자들이 성적인 욕구를 참지 못해 저지른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어요. 자신이 동성애자임이 드러나면 더 큰 피해를 보기 때문에 설령 감정이 생긴다고 해도 그 뿐이에요. 군 형법 92조(계간(鷄姦)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가 있어야 동성 간에 성행위 발생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 인식은 사실 잘못된 생각이에요.

친한 지인이나 가족 등 개인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과정은 의외로 자연스러웠다고 하셨는데요. 그를 통해 깨달은 것도 있을 듯 합니다.

처음 친한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할 때 저는 아마 적어도 40~50번은 고백할까 하다가 그만두고 했던 것 같아요. 처음이 가장 힘들었죠. 그러다 결국 고백을 했을 때 친구는 좀 허탈하게도 ‘어, 너는 그래 보이더라’고 하며 아무렇지 않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웃음). 그때 들었던 생각은 ‘아 내가 감춘다고 생각을 했지만 은연중에 나를 드러내고 살았구나’였어요. 그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아요. 커밍아웃을 못하고 망설이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감춘다고 하지만 은연 중 자기 성 정체성을 드러내고 살았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감춘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거예요. 좀 더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가졌으면 해요.

아무튼 또 힘든 커밍아웃은 바로 부모님께 말씀 드리는 것이었어요. ‘나 편하자고 부모님을 괴롭히는 일은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힘들었죠. 그런데 최근 저희 어머니께서 ‘네가 커밍아웃을 해줘서 고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들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모른 채로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걸 알게 돼서 지금은 너무 좋다고요. 현실적으로 부모님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지만, 계속 숨긴다면 큰 벽이 생기게 되요. 전 벽을 쌓아 둔 채로 이별하는 것은 부모님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커밍아웃은 강요할 문제는 아니지만 전 적극 권장하는 편이에요. 제 경우는 커밍아웃 한 이후에 자존감과 행복지수가 높아졌거든요.

반면에 사회적 커밍아웃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하셨는데요. 걱정 됐던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커밍아웃을 하려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 중 굉장히 중요한 것은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만이 아니라 지인과 동료, 가족들에게도 준비를 시켜야하죠. 나는 준비가 돼 있다고 해도 다른 가족들은 그렇지 못해 상처받을 수 있거든요. 마음의 준비를 시켜두는 거죠. 저는 5년 정도 준비를 한 뒤에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에 특별한 불이익은 없었어요.

다만 사회적으로 커밍아웃 하지 않았으면 안먹어도 될 욕을 먹는 경우는 있어요. 인터넷 상의 익명성이 보장 된 공간에서 욕설들이죠. 커밍아웃을 안했다면 저를 몰랐을 거고 공격받을 소지가 없었으니까요. 초반에 조금 힘들긴 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책에서 영화 ‘사랑은 100℃’에 대해 설명하실 때 감독님 깊은 곳에 어두움과 우울함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제껏 명랑하고 즐거운 모습만 보여주셨던 터라 의아한 사람들도 많을 듯 하네요.

제가 커밍아웃하고 밝게 살고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원래 넌 그런 사람이여서 가능한데,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이야기하거든요. 하지만 저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지 않았던’ 시간을 정말 오랫동안 보낸 후에야 지금처럼 살 수 있었어요. 원래부터 밝은 사람이어서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아는 한 제 주변에 있는 동성애자들은 100% 다 스스로를 부정했어요. 성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 ‘아, 나 동성애자구나’ 하는 사람은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공격받는 것도 상처인데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은 더 큰 상처가 되죠. 그러면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행복 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 할 수 있을까’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거예요.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누가 동성애자인지 모르는 상태니 더 어렵죠. 하지만 이성애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언젠가 모 개그맨이 방송에 나와 학창시절에 동성애자로부터 고백 받았을 때 토했다고 이야기하던데, 전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나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네요.

그렇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만이지 ‘토했다’라니…….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극단적으로는 자기 스스로에게도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내가 왜 남자를 좋아할까, 토 할 거 같다’와 같이 동성애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상처가 깊을 수밖에 없죠. 그 상처를 또 다시 들춰내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영화였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잘 몰라주시더라고요. 만약에 안다면 그런 식의 표현이 나오지 않겠죠. 그 개그맨 분도 알았더라면 그런 식으로 표현하진 않았으리라 믿어요. 물론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동성애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안다면 그러진 않았을 거예요.


물 만난 고기처럼 살아온 시간들

처음 김조광수 감독을 만나면서 말부터 행동까지 조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기자 역시 동성애자의 마음이나 상처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오랜 세월 은연중 쌓여왔던 편견의 무서움 절감했다. 눈앞에서 이야기하는 그는 너무나도 편안하고 솔직한 사람이었고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프로페셔널이었다. 대학시절 주사파 운동권이기도 했던 그가 영화판에 뛰어들어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재능을 펼쳐 온 이야기들은 그런 그의 매력을 더 잘 알 수 있게 했다.

 

그가 이제까지 제작하거나 감독한 영화들 (이미지 제공- 김조광수 감독 )

 

청년필름을 설립한 이후 이제까지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때론 감독까지 맡으시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오롯이 ‘밝고 명랑한 세월’이라고 표현하시더군요. 과연 그러한 긍정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네요

일단 전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오래전에는 어린 마음에 창피함이나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것은 제가 가진 장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전 이 사회에서 어차피 약간 비주류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성 정체성으로도 그렇고 취향으로도 그렇고요. 가난이 두렵지 않다는 건, 이 사회에서 비주류로 살기에 적합한 성격이라는 말이기도 해요.

또 제가 좀 철이 없어요(웃음). 그것도 단점이자 장점인데,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하고 나서 그 결과를 가지고 판단을 하는데 판단을 할 때도 가능하면 장점을 더 많이 보려고요. 그런 점이 다른 사람 보다 좀 밝고 긍정적이면서 명랑하게 살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된 것 같아요. 또 지금까지 저를 버티게 한 힘인 것 같고요. 그렇다고 특별히 노력해서 그런 결과가 얻어진 것 같진 않아요. 가능하면 그렇게 보려고 한 것뿐이죠. 다른 분들도 그렇게 살면 편하지 않을까요. 긍정적으로 장점만 보려고 노력하면 행복지수도 높아져요.

스스로도 관객과의 대화를 많이 한다고 하셨는데, 관객 중 극단적인 동성애 차별론자와 만난 적은 없으셨나요.

제 영화의 경우 호모포비아(동성애 혹은 동성애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와 그로 인한 차별을 일컫는 말, 동성애혐오증이라고도 한다)인 분들은 중간에 보다 나가시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그래도 특이했던 두 분 정도가 기억에 나요. 한분은 본인도 게이셨는데 여성스러운 게이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시더라고요. 이성애자가 갖고 있는 편견 중에 ‘게이는 여성스럽다’는 생각을 더 조장한다는 게 이유였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은 게이가 아닌 ‘여성스러운 남성’에 대한 혐오거든요. 남자나 여자나 모두 여성성과 남성성을 다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남성적인 여성을 혐오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매력으로 보는 경우도 많아졌잖아요.

반면 여성스러운 남성에 대한 혐오는 아직까지 이어진 것이고 그것을 없애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도 전 게이 남성의 경우 보통의 남성보다 여성스러움이 많다고 봐요. 자기가 갖고 있는 여성성을 게이이기 때문에 좀 더 드러낸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렇고 제 주변에 많은 분들도 그렇고요. 만약 관객이 불편해 하더라도 자꾸 드러냄으로서 여성스러운 남성 혐오나 편견을 극복해나가야지 감추는 것으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퀴어영화를 만들면서 이성애자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동서애자의 정서를 이해시키는데 몇 배의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이번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경우는 노하우가 좀 생기셨을 듯 한데요.

일단 초반에는 동성애자들을 많이 만나보게 해요.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도 많이 보여주고요. 그게 시나리오로 접했을 때보다 훨씬 효과적이거든요. 그리고 어쩔 수없이 설명을 많이 하죠. 전반적으로 동성애를 이해시키기에는 시간이 짧으니까요. 2개월 반 정도의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집중적으로 가르치는데 매번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껴요. 결국 어느 선에서 타협하곤 하죠.

10대 주인공 역할을 연기하는 20대 초반의 연기자들은 이성애자로서 사랑의 경험이 짧다보니 동성애자의 느낌을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30대 중후반 배우들과 작업을 하다보니까 어렵더라고요. 이성애의 경험지수가 높다보니 동성애를 받아 들이는 게 조금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군요. 아무래도 30대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경험이 훨씬 깊고 이성애자 입장에서 동성애를 해석하려고 하니까요.

그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 동성애 건 이성애 건 사랑에 대한 인식만큼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으로 들리네요.

맞아요. 큰 차이가 없어요. 다만 방식에 큰 차이가 있죠. 동성애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걱정부터 하게 되요. 스타트가 다르죠. 스타트하는 시점의 감정이 달라야하는데 그걸 이성애적으로 표현하면 제가 원하는 감정상태가 아니니까요. 배우들에게 이야기해도 그 부분은 쉽게 못 받아들이더라고요.

과거 운동권으로 살았던 경험은 영화계에 제작자로 일하며 긍정적인 시도로 발현되기도 했다. 영화계 문제로 지적돼 온 열악한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해 스태프 월급제 실현, 노조설립, 흥행 인센티브 등을 도입하며 변화를 주도한 것이다. 그는 그런 시도를 ‘사회적 의무감’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사를 운영하시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생각들이었나요.

제가 영화사 대표 일을 하게 되면서 사회적인 의무감을 실현하는데 있어서는 그 전보다는 조금 손쉬워진 것 같아요. 뭔가 회사 안에서는 변화를 보여줄 수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는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변화들이 영화계 안에 정착되었기 때문에 보람 있게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멀었다 싶어요. 영화산업자체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자체가 크지 않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고 이직률이 높죠. 또 저는 사용자일 수밖에 없잖아요. 고용을 하는 입장이니까 스스로 한계를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면 영화인들 스스로 노동자임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관철해 나가야 하는데, 다른 직종에 비해서 프리랜서들이 많고 그렇다보니 노동자임을 의식을 못해요. 그래서 먼저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거든요. 그런 문제가 아직 남아있어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

그에게는 열아홉 살 차이의 애인이 있다. 그러나 많은 나이차가 두 사람 사이에 문제되진 않는다. 양쪽 부모 모두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허락까지 받았다. 김조광수 감독은 조심스레 결혼을 꿈꾸고 있다. 동성애자 연인들은 서로를 파트너 혹은 동반자라고 한다. 파트너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사랑과 신뢰가 느껴진다.



결혼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요.

두 사람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은 것은 뭔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아요. 제 삶을 돌이켜봤을 때 전 항상 선배 혹은 연장자의 위치에 있었어요. 학생운동 할 때도 복학한 뒤여서 항상 선배였고, 회사에서도 제 나이가 제일 많았죠. ‘친구사이’라는 동성애자 단체에서도 제일 연장자고요.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지 의지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근데 이젠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어떤 관계로서 의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가정을 꾸린다고 했을 때 동반자로서 의지하고 싶다는 욕구죠. 어렸을 때부터 결혼식이라는 것을 정말 하고 싶었어요. 제가 퍼포먼스를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결혼식을 해 보고 싶은 욕망도 있고요(웃음).

파트너를 만나 함께 살아가는 동성애자들의 숫자가 적지 않을 듯 한데요. 그러나 서로의 관계를 드러내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역시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아직까지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 속에서 결합의 형태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혼 관계에 놓여있는 이성애자 커플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생각해주잖아요. 우리의 경우에는 법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인 인식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손가락질 받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속에 놓여있다는 자체가 어려운 부분이죠. 이성애자들하고 동성애자들하고 다른 것은 사랑의 방식이에요. 이성애자들은 일상적인 연애가 가능하잖아요. 일상적인 공간에서 과연 상대가 나와 맞는지를 관찰할 수 있죠.

그러나 동성애자들의 경우 쉽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제가 속한 단체거나 한 경우 커밍아웃하기는 쉬우니까 거기서 만나서 지켜보면서 판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 공간 아니면 게이바 거든요. 그런 곳은 인적사항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호감이 생기면 연결고리를 만들어야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서두르게 되요. 동성애자들의 연애가 만남도 빠르고 헤어짐도 빠른 이유에요. 그래서 더 문란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사회적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장점이라면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속력이 강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헤어지는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다른 모든 것을 떠나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를 사랑할 권리는 똑같이 인정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극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비단 성소수자들에게만 국한된 편견과 혐오가 아니라는데 있다. 사회가 글로벌화 되며 외국인 노동자, 이주민들 등이 증가 하는 상황에서 자신과 다른 대상에 대한 극심한 증오를 가진 이들이 집단적인 행동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편견에 대응해 성소수자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바로잡기 위한 방안으로 김조광수 감독이 추진하는 것이 바로 LGBT 센터의 설립이다.

LGBT, 성소수자들은 우리사회에서 이제 그나마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단계라고 생각되는데요. 부정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LGBT센터의 구체적인 목적을 설명해주신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인권 의식의 정도가 굉장히 낮아요. 외국의 경우에 LGBT를 포용하느냐 아니냐가 인권의 바로미터로 인식 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지자체나 정부단체의 성소수자를 위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죠. 그런데 우리는 출발 단계도 안되는 상황이에요. 성소수자의 인권은 아직 저 바닥에 있는 거죠. 성소수자단체에 대한 지원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래서 성소수자단체들이 활동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많아요. 편견에 가득한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기 때문에 단체를 유지하는 것 자체도 힘들고요.

저는 그래서 외국의 큰 빌딩에 자리한 LGBT센터는 꿈꿀 수 없는 상황이지만, 조금이나마 성소수자단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게 도와주고 싶어요. 이를테면 그 지역에 동성애자, 이성애자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미디어 센터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센터가 그 지역 사회 안에서 순기능을 하면서 성소수자들도 이성애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할까요.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스스로를 알리고 LGBT를 알리는 일들을 이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때론 영화일 수도 있고 때론 책이나 또 다른 활동일 수도 있다. 그런 그의 노력이 단순히 성소수자만을 위한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 사회에 잔존한 고정관념과 편견 역시 그런 그의 노력을 통해 개선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고난 대로 살아갈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그 사람의 조건과 상황, 성 정체성을 떠나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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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김조광수,김도혜 공저 | 알마
밝고 즐거운 게이 김조광수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넘나드는 성공한 제작자이자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영화감독으로, 자신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성 소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김조광수만큼 확고한 철학과 당당함을 가지고 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또 있을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김조광수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다. 제작자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그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사회적 커밍아웃 이후 성 소수자 인권운동을 주도하면서 그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