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0131112-1.gif“어렸을 때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조조로 봤는데 옆에 앉은 아저씨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떠나지 않았어요. 아주 이른 시각이었고 그 아저씨는 영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생김새였는데 말이죠. 그 때 엉뚱하게도 ‘설마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살인범이다’는 살인참회 자서전으로 스타가 된 연쇄살인범과 미제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형사의 대결을 그린 액션영화로 지난 1일 제5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정병길 감독에게 신인감독상 트로피를 쥐어줬다.

본 한국일보는 지난 9일(토) 릴아시안(Reel Asianb) 영화제 참석차 토론토를 방문한 정감독을 만나 ‘한국식 액션블록버스터’의 박진감 넘치는 촬영장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른 시각이라 그 날 아침 영화관에는 저와 그 아저씨 단 둘이었죠. 어린 마음에 ‘설마 이 아저씨가 범인이 아닐까? 만약 이 아저씨가 영화의 각본을 썼다면?’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어요. 더나가서는 ‘만약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에 이 사람이 살인고백을 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살인범이다’는 지난 2008년 스턴트배우들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는 액션배우다’로 호평을 받은 정 감독의 첫 장편 액션영화로 영화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상영회 당일 관객은 물론 영화제의 헤더 긍 예술감독까지 두 엄지를 치켜들며 칭찬한 스릴 넘치는 액션이었지만 촬영 중에는 계획하지 않았던 장면도 연출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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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모든 격투장면을 완벽하게 짰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액션영화의 특성상 막을 수 없는 사고도 있었다. 

“고속도로 격투씬 촬영 중 박시후씨가 중심을 잃었고 그걸 막으려던 스턴트배우가 다쳐 입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가슴 아픈 사고였죠.” 

공소시효가 지난 후 자서전으로 죄를 고백한 살인범과 그를 납치하려는 유가족,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을 막게 된 형사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보네트(후드)를 넘나드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 배우 박시후가 미끄러져 떨어질뻔한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스턴트맨은 회복한 후 활동을 재개했지만 당시에는 촬영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을 정도의 아찔한 사고였다.

“액션장면 중 90퍼센트를 컴퓨터그래픽 없이 찍었습니다. 극중 인물들이 달리는 차 위에서 격투하는 장면은 배우들이 다칠 위험이 커서 항상 긴장상태였어요.”

이 외에도 영하 25도의 추위, 잦은 폭설과의 사투, 배우들의 찰과상과 부상 등을 딛고 270만명의 관객을 동원, 판타지아영화제·뉴욕아시아영화제·릴아시안영화제 등 다양한 국제영화제에 선택되고 신인감독에게 2개의 상을 안겨줬다.

정 감독은 대종상영화제에서 ‘늑대소년’ ‘몽타주’ ‘숨바꼭질’ ‘힘내세요 병헌씨’ 등 쟁쟁한 작품을 연출한 감독들을 제치고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예상도 못한 축복이었지만 앞으로 관객에게 더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는 정 감독은 현재 차기작으로 1994년 한국을 무대로 한 SF액션 블록버스터를 계획 중이며 그 후에는 캐나다나 미국 등의 영어권 국가를 무대로 삼은 액션영화도 계획하고 있다. 

유난히 액션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정 감독은 이렇게 전했다. 

“액션은 수학이나 음악처럼 전세계의 공통용어입니다.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관객도 액션은 즐길 수 있잖아요. 언젠가 액션영화로 전세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