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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사랑방 ( Toronto Story board )

오타와 히스토리 뮤지엄...

by 샘터0 2021. 8. 15.

8월6일 금요일

오늘 저녁을 먹고난후에, 내남자가 오타와 게이바 T's pub 에 가자고 한다. 오타와 게이바...조그만 공간에 별다른 이벤트도 없고, 토론토 게이바에 비하면 무슨재미로 갈까 싶은곳이지만...그래도 오타와에 유일하게 남은 펍 게이바...( 바이마켓에 있는  룩아웃은 유일한 댄스바 )라서 구경삼아 나선다. 나는 오타와에서 다운타운에 나올일이 거의 없다. 내남자는 다운타운에서 일했었는데, 이젠 그일도 끝나서...갈일이 없어진거다. 다운타운에서 게이 스트릿이라고 하는 서머셋 스트릿과 뱅크 스트릿에 도착해보니, 뱅크 스크릿은 차량이 다니지 못하게 막아져있고, 레스토랑 테이블들이 길가에 놓여져서 영업을 하고 있다. 여름철이면 오타와도 거리를 막고 레스토랑 비지니스를 활성화 시키는것같다. 내남자가 뱅크스트릿이 레스토랑이 몰려있는 거리라고, 그래서 뱅크스크릿이 오타와에서는 중심이 되는 거리인가 보다. 티스 펍바가 근처에 있어서 가보니, 가게 앞 파티오 테이블 서너개는 손님들이 다 차있고, 실내에 들어가니 테이블 사이마다 비닐로 가려놓기는 했는데, 임시로 해놓은듯한 어설픈....그래서 분위기가 무슨 싸구려식당에 들어온듯한.... 건물옆으로 돌아나가면 파티오가 더 있다고 해서 그곳에 가서 남아있는 테이블을 하나 잡았다. 다른테이블에는 레즈들이 단체로 차지하는 테이블하나, 그옆에는 그레즈들하고 친한 게이들 그룹들이 차지했는지 서로 인사도하고 대화도 나눈다. 그리고는 혼자 앉아있는 동인도 계열 30대가 테이블 하나 차지하고 있고,,,나중에 그들의 친구들 대여섯명이 합류하는데...그 테이블은 그나마 아시안 게이 서너명이 들어있는...내가 오타와에서 가장 많이 본 아시안들 테이블이네...

 

내남자는 드링크를 시키고, 나는 주스를 시키고 같이 앉아서...불어대는 바람에 몸을 적시며 그냥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나와서 다른사람들이 술마시는 테이블 옆에 앉아본적이 오래전 기억들이다.  그렇게 잠시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뱅크스트릿을 손잡고 걸어가보기로 했다. 뱅크스트릿 따라서 이렇게 걸어보는건  내겐 처음이다, 그냥 잠시 뱅크 스크릿을 지나치거나 들렸다 가기는 했지만...내가 보기에는 소규모도시같은 느낌의 비지니스들...그래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나와있는건 오랜만에 본다. 내남자가 걸어가다가 아이스크림을 먹고싶다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는데...중국인이 운영하는 아이스크림가게..주방을 볼수없게 커다란 스토리지로 막아놓은 카운터..( 살짝 들여다봐도 잘 정리된 가게는 아니다 ) 아이스크림을 만들때 드라이 아이스를 사용하는데 아이스크림에 안개처럼 드라이아이스같은 안개를 뿜어대는 질산(?? 을 사용하나 ?? )같은 커다란 가스통이 매장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화학적으로 아이스크림의 맛을 다르게 만드는것같은데....내가 먹어본맛은 아이스크림맛이 굉장히 약하다. 유제품의 고소함을 물에 많이 섞어버린듯한 ....이런맛을 모라고 표현하나 ?? 나는 다시 찾고싶은 맛은 아니다. 내남자는 그런대로 즐기는듯...가격도 다른 아이스크림에 비하면,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스때문인지 조금 더 받는다. 

그렇게 걸어서 다시 차로 돌아오는중에 인디펜던스 식품점이 보여서 들어가서 요거트 하나 사서 나왔다. 그리고는 차를 타고 집으로 ...

 

8월7일  토요일

내남자는 자전거로 퍼스널 트레이너집에 운동하러 가고, 나는 자전거타러 나갔다가 12시반경에  다시 같이 만나서, 리도커널에서  고가다리 건너에있는 리츠레스토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같이 갔다. 내남자가 이곳에 복숭아 샐러드가 있다고 해서, 나도 그메뉴를 주문해서 먹어보았다. 샐러드에 블루치즈 조그만 덩어리와 아메리칸 복숭아가 들어간 샐러드, 그리고 넛....맛이 좋다. 그래서 집에와서 저녁에 나도 복숭아를 넣은 복숭아 샐러드를 만들어보았다. 복숭아의 상큼함이 묻어나는 괜찮은 맛이다. 

 

8월8일 일요일.

 

오늘은 아침을 먹고 먼저 자전거를 타고, 오후에 히스토리 뮤지엄에 가기로 했다. 오타와에서 다리를 건너 오타와 강변 퀘벡지역에 위치한 이뮤지엄은 대략 10년전에 한번 갔었는데, 그당시에는 시빌라이제이션 뮤지엄이라고 해서, 네이티브들의 자료가 많았던것으로 기억된다. 이뮤지엄을 설계한 건축가는 네이티브인데, 건물에 자연의 흐름을 담아서 지었다. 그래서 곡선으로 웨이브가 느껴지는 이건축물의 특이함은 바람이나 물결의 웨이브를 상징한다고 한다. 내남자가 티켓을 예약할때 오후 1시20분과, 오후 1시 45분으로 예약이 되어서, 내가 먼저 들어가서 둘러보다가, 내남자와 나중에 만나서 같이 뮤지엄을 돌아보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밴쿠버, 빅토리아 지역) 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네이티브들의 6개의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이 집중적으로 전시되어있다.벤쿠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뮤지엄이 있는 스탠리 파크에도 네이티브들의 전시품들이 상당히 많은편인데, 주로 일상적인 용품들을 방대하게 전시한듯한데...히스토리 뮤지엄은 각부족들의 특징적인것들을 선택적으로 모아둔듯하다. 그래서 좀 많이볼수없는 특이한 전시품들을 많이  소장한듯하다. 그래서 흥미로운 제품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이 뮤지엄에 올때마다 보는 천장에 그려진 칼라도감같은 화려한 칼라는 이 뮤지엄의 아이콘이다. 제목이 모닝스타 라고 하는데....이 천장의 그림은 다른구역의 네이티브전시관으로 이동할때 볼수있다. 다른구역의 네이티브전시관은 보통사람들이 네이티브들을 잘 모른다. 그래서 네이티브사람들중에 카나다에 공헌한 사람들의 이름과 내용들이 전시되어있어서 사람들에게 네이티브를 인식하게 만드는 교육자료들을 많이 모아둔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이티브들의 실생활을 소개하는 자료와....네이티브 부족들이 위치와 이름들...그리고 네이티브들이 격어야했던 레지던스 스쿨 내용들....( 얼마전에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한 레지던스 스쿨 땅을파다가 240여개의 어린이들의 유골이 파일로 쌓여져 묻힌장소가 발견되었다.) ... 나도 네이티브들의 내용에 대해서 많은것을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왜 네이티븓들은 알콜중독에 자살률이 그렇게 높은지...??  그런데 그내용들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몇백년동안 이어져온 그들에대한 정부의 태도가 이런불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네이티브들은 아시안대륙에서 살던사람들이 러사아의 시베리아반도를 거쳐서 알라스카를 통헤서 이동한 사람들이라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그들은 기본적으로 아시안같은 얼굴을 하고있다. 그런데 아메리카로 들어온 영국,프랑스사람들이 네이티브들을 몰아내고, 전쟁을 하면서 서로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다가 네이티브들과 협정을 맺은것이다. 그런 협정이 지금의 카나다나 미국이라는 국가의 틀로 형성되기전에 이루어졌다. 카나다에서 인디언 액트 라는 법이 1876년 만들어졌는데, 이법은 메티즈( 인디언과 결혼한 프랑스인) 족과 이누잇족( 퀘벡주에서 아주 북부지역으로 강제로 정부가 이동시킨 네이티브족, 카나다인의 영토로 사수하도록 이용하기위한 목적)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디언 액트의 내용은 내가 잘 모르지만, 네이티브와 정부간의 네이티브들의 땅을 사용하는방법에 대한 협약이다. 그래서 네이티브들은그들의 땅에 대한 주권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82년에 메티즈, 이누잇족도 포함해서 네이티브로 인정해주는걸로 다시확정을 했다고 한다.

 

네이티브들이 많이 사는곳은 센트럴 카나다 ( 온타리오 북부 ), 프레리 지방 (에드먼튼,샤쓰콰쳔주,마니토바주 ) %에 67%를 차지하고, 브리티시컬럼비아까지 합하면 84%를 차지한다. 

 

아무튼, 레지던스 스쿨은 카나다 역사에서 드러내기 싫어하는 흑역사다. 그런데 흑역사는 사실대로 밝혀내고, 세상에 올바른 사실을  알리고, 그런 흑역사를 되풀이 하지않도록 교육하는것이,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지혜를 얻는 최선의 방법이 된다.  이런 흑역사를 카나다 정부는 아직도 다 진실대로 밝혀내지 않고 있다. 카나다 정부와 천주교 종교지도자의 권력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흑역사다. 네이티브 자녀들을 강제로 부모들과 격리시켜서 레지던스 스쿨로 보내고, 레지던스 스쿨은 천주교 수녀와 수도사들이 통제하면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무조건 천주교의 교리대로 따라야하는 감옥같은 집단 생활을 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교육되지 못한, 인간적인 욕심으로 가득찬 수녀들과 수도사들에 의해서 많은 어린이 들이 정신적상처와 육체적 상처를 앓아왔었고,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 어린이들을 굶주리게 만들거나, 가학적인 체벌, 그리고 성폭행을 일삼아 왔다. 그래서 많은 네이티브 어린이 들이 정신적 트라우마속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다가 경찰에 걸려서 다시 들어오면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아왔고.....그들중에 상당수가 그런 학대로 인해 죽어갔었는데, 그런 사실을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땅을 파서 묻어버린채로 끝내버린 어린이들이 한 학교에서만 240여구의 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학교가 카나다에 120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천주교라는 종교인들이 그런일들을 저지르는것을 대다수의 카나디언들이 침묵으로 동조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일은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카나다인의 양심의 가장바닥을 보여주는 흑역사다.  

 

한국인으로서는 일제치하에서 자란 우리부모세대들의 이야기를 되새기게 만든다. 일제치하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한국인의 이름을 전부 일본인 이름으로 강제로 개명하게 만들고, 한국인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한국인들을 억압해왔던 일본인들...한국어를 사용하면 무조건 철장에 가두어놓고, 마음에 않들면 죄를 만들어서 철창에 아무때나 가두던 일본경찰들.....그런시기에도 중국만주나 다른나라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한국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일생을 다 바쳐 활동했던 많은 이름없는 독립운동을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래서 세계전쟁이 일어났을때는 한국사람들을 강제로 전쟁물자 생산공장으로 끌고가고, 한국의 어린소녀들을 전쟁을하는 일본군 성노리개로 끌고가고....그런상황이 발생했다. 한국인으로서는 그런시기에 대한 풀어낼수없는 원한이 엄청나게 쌓여있는데...일본정치인들은 우파들이 정권을 차지해서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잘못된점을 인정하고 사과할 생각이 없고, 가짜 역사를 만들어서 거짓역사책으로 일본인을 가르치고, 세계를 상대로 자금을 지원하면서 회유책으로 로비를하며 버티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한국인의 경험으로 볼때, 일본인들의 잔악한행위보다 더 심각하다고 느껴지는 레지던스 스쿨의 상황은 유태인의 홀로코스트 수용소와 비교해야할 인권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런처우를 받고 자란 네이티브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올바른 성장을 하지를 못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인간적인 기본권리를 철저하게 유린하고 문화와 정서를 파괴한 인종학살범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나다정부는 아직 진실을 밝혀내지 않고있다. 노력한다는 변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점이다. 진실을 밝히고, 네이티브들의 문화아래서 그들의 방식대로 자립해나가는 정책을 꾸준하게 펼쳐서 카나디안의 생활안으로 끌어들이고 해결해나가야 할것이다.

 

특히 천주교에서 가지고있는 자료를 공개하지않고 버티는것은 지켜볼수가 없다. 천주교 지도자들이 권력을 등에업은채로 이런 인종학살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이나 천주교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덮어버리려는 태도를 유지하는것은 천주교라는 종교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를 보여주는것이다. 이런사람들이 누군지도 알지못하는 지저스 라는 사람에게 맹목적 충성을 하고, 사람들로 부터 기부금을 받고, 그기부금으로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며 권위를 지키며 안락한 삶을 살아가고있는 현실은 아이러닉하다. 지저스가 과연 그들의 행동에 찬성할것인가 ???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때가 너무많이 지났다. 결국 종교인들도 보통사람의 상황아래에서는 보통 인간일뿐이다. 보통사람들처럼 권력을 차지하고 싶어하고, 그 권력이 주는 권위를 안락하게 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들의 말이라면 굳게 믿고 따르는지 이해할수없다. 스스로의 판단능력이 떨어지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천주교 지도자들은 지저스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권위의 달콤함에 물들어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이 열심히 지저스를 말하며 충성스럽게 일생을 살아갈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이렇게 인종학살의 사건을 은페하고 진실을 밝하기를 거부하는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것일까 ? 그들이 사람들을 이끌어가고, 설교하고 ,사회에 선한자들이라는 인식을 유지하며 살아가려고 하면서,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죄를 돌아보지 못하나 ? 

 

새상은 어차피 파워와 권력을 가진사람들의 생각대로 설계되고 흘러가게 만들려고 하겠지만, 그런 파워와 권력은 영원히 지켜질수 있는것은 아니다. 카나다정부는 이 레지던스 스쿨에대한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하지만, 천주교 교단을  강하게 압박해서라도, 이런 진실을 공개하고 지나간 역사를 청산하고 사과하는 작업에 힘을 실어야 할것이다. 

아무튼, 네이티브 전시관을 다 돌아보고, 2층으로 올라가서 카나다 히스토리관을 돌아보면 카나다애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결국은 영국이 승리를 해서, 영국의 속국으로 지내다가 카나다로 독립적인 나라가되기는 했지만...아직도 형식적으로는 영국여왕의 이름아래 존재하는 나라다. 카나다의 현대 역사관을 돌아보다가 피곤하고 지쳐서 다음에 다시보기로 하고, 오늘의 뮤지엄일정은 끝내고, 자전거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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