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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생·각 시리즈 ( Gay's Opinion Series )

[제2부] 게/이/생/각 모음집

by 샘터0 2010. 4. 20.

2부. 가슴으로 낮게 깔리며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

게이생각 7 1998-03-18 01:44 23 line
도시는 사람을 바람둥이로 만든다.
화려한 불빛으로 점등하는 도시에서는 바람둥이로 살게한다.
내가 좋아하는것만을 집착하게 만들고,
그러다가 싫어지면 그냥 걷어차게 만든다.
한순간의 좋았던 생각이나 감각들로 애무하다가
자본의 똥을 집어들고 소비하고나면
그냥 던져버리면 되는 편리한 바람둥이의 소품들만 서 있다.
바람이 부는 골목에는
오늘도 졸고있는 똥단지같은 감각들이 뒹군다.
풀석 주저앉아 뚱단지같은 놈들의 발길에 채여구른다.

도시는 쉽게 싫증내고,쉽게 잊고,쉽게 버리는
바람둥이의 휴지통으로 높게 서 있다.
봄바람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

게이생각 12 1998-03-24 22:37 24 line
친구가 꽃아놓은 분꽃의 향기가 내방에서 시들어간다.
노오란 분꽃이 놓여진 내방을 들어왔을때
봄이 내 방으로 다 들어와있는것 같았다.
사람은 자신만의 향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적이 있다.
그러나 봄마다 향그러운 이 분꽃의 향기처럼
고요하면서도 흠뻑취하게 하는 사람은 없을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향기가 있을까..
나는 인간적인 향기가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을 타박하고,잘못된점들을 들추어내고 성깔을 부리는데에는
능숙하다고 여겨지지만....
인간적인 애정으로 눈감아주고,
그 사람의허물을 덮어주는것에는 상당히 부족하다.
그것은 내가 깨끗하지도 않으면서, 다른사람을 헐뜯고 비하시키는것이
또다른 즐거움으로 여겨서 그러는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든다.
사람은 넘치는것보다 오히려 부족함이 좋다고 하던데...

나는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눈감아주는 아량을 가지는 미덕을 갖고싶다.
그리하여 나에게도 봄이오면 생각나는 향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에게도 향기롭게 살아가게하는 좋은 친구가 있겠지요 ?

게이생각 14 1998-03-30 00:53 19 line
나는 첫사랑의 달콤한 기억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사랑을 할수있을때였고,
사랑을 위하여 다른모든것을 감내할 무모함도 지닌때였다.
그런 사랑을 다시는 할수없게 되리라는것을 나는 몰랐었다.
단지 첫랑의 달콤한 기억만이 나를 이끌고있던 나의 환상을 키운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사랑의 기억이 ...
지금까지 나를 이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그런 애틋한 사랑을 할수 없을것만 같아 우울하다.
나는 이제 영악스럽게 나를 지켜가는 조건이 늘어나는것같다.
그래서 이제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할것 같다.
첫사랑만큼 강렬한 사랑을 경험 해 보셨나요 ?

게이생각 28 1998-05-16 23:13 26 line
비오는날에 창문을 열고 듣는 음악은 상큼하다.
현악기에서 튕겨나온 음정들이 빗소리가 땅에 닿으면서 튕겨오르는듯이
뛰어올라 내귓가에 머무르다 떠나는것처럼 느껴지기에 신선의 음악같다.
현을 그어내리는 음정들이 오르내릴때는
내 가슴도 함께 천상의 공간을 오르내리는 기분이 든다.
이런날에는 첼로음이 가슴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현악기의 고음들이 빚어내 날카로움과,
저음으로 짙게 깔리어 파고드는 음정들이 나를 들뜨게 한다.
음악은 ... 클래식음악은 언제나 고요하게 한다.
가볍게 몸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을 일렁이게 하고
때로는 파도처럼 몰아치며 달려들기도 하면서
음악은 잔잔한 해변을 걸어가는 연인들의 모습처럼 나를 감싸 안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찍어놓은 발자욱만 남아있는 해변의 바람처럼
세상사는 시름을 시원하게 던져버리게 한다.
내 가슴속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한번씩 씻어내는 이 음악소리는
비오는날에 들으면 감도가 상당히 높은 음악으로 나를 깨우고
나는 고감도 뮤직에 매료된 자유로운 한마리의 고고한 학이 된다.
비오는날에 당신도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가요 ?

게/ 이/ 생/ 각/ 35 1998-06-03 22:18 38 line
하늘이 푸른 잠자리처럼 내려 앉았다.
바람의 소슬함이 어느덧 내 가슴에도 스며들고
오늘 저녁은 웬지 허전한 밤이 되고 만다.
이런 저녁에는 ..
차한잔을 나누며 밤새 소곤거릴 친구같은 사람이 필요했었다.
내 눈가를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매달리고 싶은 기억들을 토해내며
세상사는 일은 잔잔한 호숫가에 묻어두고
그림같은 풍경들을 바라보며
소근소근 둘만이 빚어내는 알맹이로 굴러갈듯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달빛이 옷벗는 소리에 밤을 지새고
달빛이 물결위를 건너가며 멱 감는 소리에
갈대밭 줄기들은 키대로 서서 몸을 흔들고...
그런 친구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부끄러움도 잊은채로
살아가는동안 실수했던 이야기들을 죄다 늘어놓고
별들도 숨어버린 밤하늘에
커다랗게 웃어대는 잇자죽만 실날처럼 연거푸 풀어대면서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줄 모르게 즐거운 사람...
이런 스산함이 등을 밀어낼때는
나뭇잎들의 손 흔드는 소리를 귓가에 담으며
담담한 도시의 한밤을 걸어가는 산책을 즐기고
골목 언저리에 개짓는 소리가 가까워질때마다
새벽이 오는 아침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뛰어가는 모습을하는
나이도 저 만치 멀리에 던져두고
세상일도 저하늘끝에 던져두고
내가 가고있는 이 길과
내가 즐거워하는 이 시간들의 공간을
그저 함께 걸어가는 사람...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사람이란
그런 친구같은 사람일게다.

게/ 이/ 생/ 각/ 40 1998-06-21 20:03 35 line
푸르게 짙푸르게 펼쳐진 산속에 몸을 담그고
그렇게 쉬어가는 시간을 보내며.....
버스안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로 바라본 바깥풍경은
파라노마 사진을 펼쳐보이는것처럼
푸르른 색깔을 하고 있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철길위에 피어있는 하얀들국화무리들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홀로 피어난 들꽃들이 애처로워보이던 시간들은 지나고
먼지가 풀풀날리는 철로위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있는
들국화가 예쁘게만 느껴진다.
세상을 살면서
작은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것은
작은것들의 아픔을 알기때문일까...
커다란것, 스케일이 큰것, ....
그런것들만이 좋은것이라고,
그런외형으로 보여져야 발전되는것이라고
잘못된 관념을 갖고있는 이 사회안에서
이제 껍데기뿐인 초대형이라든가...
이름만이 커다랗게 남아있는것들은 이제 스러지고 만다.
피곤함에 물들어가기전에
작은 한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것인지
생각하면서...
당신도 스스로의 소중함을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

게/ 이 /생/ 각/ 48 1998-07-21 00:00 33 line
내자신의 느낌으로는 거대한 규모의 음악을 들을때
가끔씩 눈물이 흐를것같은 감정을 느낄때가 있다.
소리들의 흐름이 가끔씩 나를 젖어들게 만들때가 있다.
인간의 내면에 남아있는 지독한 그리움을 자극하는것인지
아니면 그 순간의 감정에 푹 빠져있어서 그런것인지
분간할수는 없지만....
멜로디를 따라 출렁거리다 보면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젖어들기전에,
가슴으로 낮게 깔리며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를 느끼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은 늘 아름답다.
사람은 상대방이 실제로 어떤모습으로 존재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한사람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자신이 만든 환상만큼 그사람을 바라볼수있는 창을 가진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지고있는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는
상대방이 만들어준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내 방식대로 만들어놓은 가공의 환영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만든 나만의 창에서 성장하는 한사람에 대하여
너무 깊이 내버려두어 버리게되면
현실에서 존재하는 모습들과 다른방향으로 굳어버리게 하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생각들을 나중에서야 추억하는 시간앞에서 느끼게 되는것 같다.
당신도 지금 한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마음대로 창조하며 생각해보시나요 ?

게/ 이/ 생/ 각/ 57 1998-08-04 09:41 48 line
밤부터 내린비가
새벽에도 아침에도 계속내린다.
장대비로 쏟아붓는 이 비는
한사람과의 이별을 한후에 잊지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과 공간을 단절시켜버리는 빗줄기 같다.

그 언젠가
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빗속을 헤매어 다니며 다른세상을 건너가고 싶었을때
고통을 삭이기위해 방황하는 시간동안의 빗줄기 같다.
아직 사는것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에
우산을 책가방에 접어두고
친구와 함께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장난투성이의 하교길에 만난 빗줄기 같다.
비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창가에 서서
세상이 온통 젖어내리는 모습을 관조하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내가 좋아하는 시집을 펼쳐놓고
대각선으로 올려다보는 빗살무늬 하늘너머
무지개 피어나는 산등성이가 있지 않을까
꿈꾸는 환상에 젖어버린 오렌지빛깔의 입술들을
응시할때 만났던 빗줄기 같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거센비가 내리칠때면
어머님의 모습이 창가에 더욱 더 선명해진다.
빗줄기들이 하얗게 반사되는 순간에
허옇게 새버린 어머니의 머릿결을 본것만같아
저절로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우산속으로 튕겨드는 빗줄기들이
나를 젖게 만들까
젖은 신발로 빗물이 새어들까
분주하게 염려하며 걸어가느라
장대비를 느끼며 걸어가는 시간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만나지 못할 선명한 한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아픔만이 커져가는 시간들을 메우고
내 자신의 황량한 인생을 맞이하게된 까닭을 슬퍼하고 있을뿐이다.

게/ 이/ 생/ 각/ 65 1998-08-22 16:49 44 line
하늘 위에 눕고싶다.
하얀풀밭에 걸터앉아 세상을 평화롭게 내려보다가
푸른하늘위에 눕고싶다.

이렇게 높은하늘에서는
이루어질수없는 사랑으로 상처를 입지않아도 되겠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랑을 가졌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올려다보며 살겠지
깊어지는 밤의 고독함으로 열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지
저렇게 많은 별들의 축복을 받을수 있겠지
나의 사랑도
이 우주안에서 탄생한 고귀한 생명체라는것을 인정해주겠지
이 땅에서 자라고 싶다.
민들레 홀씨로 바람에 날리더라도
이땅에서 자라고 싶다.
어느곳에도 정착할수 없는 가루로 날리는 사랑들로
뼛속가득한 시름으로 가슴이 으깨어지고 찢겨지더라도
쇠스랑으로 밭고랑을 일구듯이
채여지고 버려질 사랑들을 걸러내며
이 땅에서 자라는 들꽃으로 남고 싶다.
바보같은 사랑.
언제나 시작하는 시간만이 자유롭고
여지없이 허물어져야하는 높은담장아래
홀로 스러져야할 이름없는 사랑
사랑하는 만큼 견디어야할 아픔들로
담장을 넘어서지 못해 주저앉고마는
깊은밤에도 고개드는 해바라기 같은 사랑

바다에 빠지고 싶다.
출렁이며 넘실대는 바다에
한점의 불타오르는 꽃잎으로 빠져들고 싶다.

내가 태어나기위해 묵어야했던 암흑바다에서의 잉태처럼
내가 다시 돌아가기위해 묵어야할 바다로
나는 태어나지 못할 사랑을 가졌었노라고
나는 넘쳐나는 사랑을 감당하지 못했었노라고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사랑을 하지 못한채로
흐르고 흐르는 바다에 빠져 버리고 싶다.

게/ 이/ 생/ 각/ 78 1998-10-15 01:48 48 line
비오는날은 게을러지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규칙적인 일상들을 탈출하고 싶다.

하이얀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을 강가에서 맞이하고 싶다.
아침강에서 서늘한 바람이고 싶다.
갈대처럼 서성이는 강가에서
빈배타고 떠나는 나그네이고 싶다.

차 한잔의 상큼한 입김....
가슴에 묻어둔 기난긴 이야기를 대신하고 싶다.

강을따라 걷다보면
하늘이 가득 담기는 지점에서 발길을 멈추고
홍색으로 걸린 감나무를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을 잃어버리고 싶다.
강아지풀,억새풀,제비꽃,할미꽃,.....
이름모를 풀잎들을 발길에 채이며
숲으로난 작은길을 오르고 싶다.

이슬처럼 흩어지는 작은 알갱이들의 사유
세상에 찌들었던 작은탐욕들이 굳어진 발 뒤꿈치를 문지르며
그저 이 숲속으로 난 작은길을 선택해서 걷고싶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통나무로 자라는 숲길사이로
낮게 내려앉은 세상들을 내려보며
맑은호흡으로 산책하고 싶다.

네잎크로바, 토끼풀.....
이런 작은것들이 놀이터가되고 즐거워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런 여린날들의 기억으로 일상들을 즐기며
자연속의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하고 싶다.
솔나무들의 향긋한 향내가 퍼지는 산길에서
미끄러져 내릴까봐 조바심 내며 걸어가던 그 숲속의 길들을
편안하게 걸어가고 싶다.

비가 내리면
세상이 낮아져 보인다.
비가 내리면
그 깊은곳의 그리움들이 우산을 펼친다.
비가 내리면 그리움속의 집을 짓는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집에는 나만의 그리움이 홀로 머물다 간다.

게/ 이/ 생/ 각/ 83 1998-10-25 16:47 84 line
주홍빛으로 익어가는 감나무로 받쳐든 파란 가을하늘이
수묵화의 그림처럼 가슴속에 그려집니다.
바람의 선선함이 물씬 더 가까이 다가오는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이제는 가을을 느낄수있읍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가을은 그대로 묻어납니다.
여전히 외로움과 고독함을 벗인양 마주하며 살아가는 생활이지만
올해의 가을은 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가을이 되면
나는 떠나가는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하게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떠나는것들은 떠나감으로서 더 아름다워지는것이라는것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읍니다.

이 세상의 모든것들이 영원하지 않은것처럼
내가 가진모든것들이 영원하지도 않을것이라는것을 깨달으면서
지나치게 집착하고 갈망하는것들이 내 욕심이라는것을 이제는 알게되었읍니다.
가을을 통해서 내가 성숙해졌다고 느낄수있는것은
떠나간것들이 내게 가르쳐준 커다란 교훈이라는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읍니다.
가을에는 특별히 쓸쓸하게 생각해야 할일들만은 아니라는것을
자신도 모르게 새삼스럽게 흐르는 눈물처럼 깨닫게 됩니다.

조금씩 더 붉어지는 잎새들을 맞이하더라도
노을이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는것처럼 그대로 존재하는 가을을 맞이해야 할것
같읍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가을은 온통 사랑하고픈것들 뿐입니다.
이른아침에 깨어나 한적한 거리의 맑은공기를 대할때
이 가을의 아침이 얼마나 아름다운것인지 마음이 다 젖어가도록 느끼게 됩니다.

거리를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정한 모습들입니다.
함께 동행하며 가을을 느끼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들마저도 아름다운것은
가을이 특별하게 내려주는 선물덕분인것 같읍니다.
가을에는 마음속에 작은 호수가 일렁입니다.
바람이 일으키는 작은원으로 시작된 일렁거림이 깊은 동심원을 그려나갈때처럼
마음속에는 차마 다 하지못하는 그리움들이 보라빛 향기로 일어납니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사람들은
이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운것인지를 아직 모를것입니다.
가을에 사랑이 더 깊어지는 이유를 아직 모를것입니다.
단풍잎이 짙어갈수록 깊어지는 사랑의 까닭을 아직 잘 모를것입니다.
가을은 자연 그대로가 작품입니다.
가을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만 서 있어도 하나의 전시장입니다.
가을은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온통 다 사랑할것들 뿐입니다.
가을에는 반쯤 눈을 감을때가 많아집니다.
차마 두눈으로만 다 보고덮어두기가 아까워서
반쯤 흐린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반쯤 흐린기억만으로라도 시간을 묶어두고 싶어하기 때문일겁니다.
가을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편지를 쓰고 싶읍니다.
꽃향기편지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가을의 풀꽃냄새가 살며시 콧속으로 전해지는 그런 편지를 보내주고 싶읍니다.
학창시절에 친구의 책속에 살며시 꽃아두었던 편지처럼...
재수학원 다니느라 지쳐있을 친구의 마음속에 보내주었던 그런 위안의 글들처럼..
군복무에 시달려서 단절된 세상을 차갑게 응시하던 친구에게 전해주는
달콤한 세상의 향기처럼....
가을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런 편지 한장쯤은 편하게 보내줄수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읍니다.

바람이 또 불어댑니다.
거리를 나설때마다 나를 흔들리게 하는것은
늘 이렇게 작은바람으로부터 시작되었던것 같읍니다.

가을바람은 혼자만의 바람으로도 즐거울뿐입니다.

그러나 아직 단풍여행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뒤프레의 첼로음악만 자꾸 꺼내어 듣게 됩니다.
그래서 가을은 이렇게 지나가야할지도 모르겠읍니다.

[수필] 나는 가끔 잊고 산다 !
잊고 사는 것들...
구비구비 고갯길,
미명의 새벽 겨울산행을 시도하는 행렬속에 끼여
아직 잠들지 않은 새벽달빛과의 조우가
머리칼날들을 상큼하게 한다.
검은밤이 빚어내는 산허리에는
살아간 날들을 흙먼지처럼 털어내며
입김으로 새는 시간의 묵상들이 꿈틀거린다.

고갯길을 휘어감는 불빛들이 드문 드문 눈을 어지럽히고
세상을 떠나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온
삶을 흔들어 대기 시작하며 시끌거리는 목소리들이
밤을 깨우기라도 하는듯이
밝아오고 있다.
나는 가끔 잊고산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잊고산다.
도시생활에 익숙해져서 잊어버리고 살았던
눈쌓인 겨울의 계곡들에 대한 기억들 처럼
나는 가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내자신을 생각하게 될때에는
내가 동성애에 대한 화두를 무의식중에 먼저 끄집어 내게 될까봐
무척 염려될정도인것을 보면
내가 동성애자라는것을 잊고사는것이 아니라
예전처럼 동성애자라면 기를 쓰고 드러날까봐 조심할일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생각된다.
산등성이를 내려서면 엄청나게 넒은 하늘이 내 두눈을 다 감싸버리고
고개를 들기만 하면 얼어붙은 눈꽃에 감겨진 겨울산들이 병풍처럼
나를 둘러싸는것을 볼때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잊고 만다.
고개아래에 비스듬하게 그려진 논두렁 밭두렁을
구름에 안겨서 건너가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어머님의 품안에 안긴 아기마냥 혼자 포근함에 취해산다.
하루종일 다른생각할 겨를도없이 바쁘던날
퇴근길에 몰려드는 피곤함으로 돌아가는 시간들은
사람들도 제각기 자신의 꿈을 닫고 돌아가는 모습들 뿐이다.
거리를 지나다가 호감있게 생긴 남자들을 보면 눈을 떼지못하던
게이의 허영끼가 서린 사치스런 눈요기도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잊게되는 날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게되는 황당함...!
참 웃기는 일이지만 동성애자로서도 이해할수없는일들도 일어나는구나...
동성애자도 자신을 잊어버리고 살때도 있는데
그동안 나는 왜 그렇게 바보같은 생각으로 고민을 했던것인지 이해할수가 없다.
동성애자라고 내가 인정하기만 하면 세상이 모두 나를 버리고,나는 손가락질이나
받으며 사는것이 아닌가 하고 고민한것은 그러고보면 웃기는 일이다.
그래 누구나 자신을 잊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일게다.
이렇게 어려운 경제상황에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상태인지
일일이 다 기억하며 산다는것은 불행한 하루하루가 될지도 모른다.
동성애자라고 해서 그저 애정과 사랑이 없으면 죽을것처럼 환장하는 사람들보다
가끔씩 자신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모든것을 잊고
그저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하고 살아가는것이 삶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세상은 흐르고 있는것이다.
그것은 소리없이 흐르는 인간의 삶의 역사이다.
그역사안에서 자신을 이야기 할수 잇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오늘도 잊고 산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